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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적 구토 , Fight For Justice ,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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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영화명(국문)의리적 구토
영화명(영문)Fight For Justice
제작연도1919
개봉(예정)일1919-10-27
제작상태개봉
영화유형장편
제작국가한국  
장르드라마   사극   액션  
감독김도산 ( KIM Do-san )
출연배우
김도산KIM Do-san
윤혁
이경환LEE Gyeong-hwan
참여 영화사
㈜단성시네마제작사
스탭     열기
줄거리
계모슬하에서 불우하게 자라나온 송산은 선친의 유산까지 탈취하려고 노리는 계모일파에게 온갖 박해와 고통을 받는다. 심지어 생명의 위험까지 느끼면서도 가문과 선친의 명예를 위해 은인자중하던 중, 송산은 마침내 의형제를 맺고 있던 죽산과 친구인 매초를 만난다. 그는 더러운 사회악을 뿌리뽑고 참다운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정의로 싸울 것을 그들로부터 권유받는다. 송산은 드디어 정의의 칼을 뽑아 계모일파의 무리들을 물리치고 가문의 평화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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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적 구토`는 왜 한국 최초의 영화인가
[공연소식] 연극으로 만나는 한국 최초 영화 '의리적 구토' 外
[최초로 본 한국영화 100년] ①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 원형 추적기
'의리적 구토'부터 '기생충'까지…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展
‘의리적 구토’부터 ‘기생충’까지…파란만장 ‘한국영화 100년’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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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적 구토 》(義理的仇討) 또는 《 의리적 구투 》(義理的仇鬪)는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공개되고 김도산이 극본·연출한 한국 최초로 만들어진 영화이자 연쇄극이다. 개요 당시까지 한국에 소개된 영화는 겨우 3~4분짜리였고, 한국인이 만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일본인이나 서양인이 가지고...
義理的仇討 1919년에 김도산(1891 ~ 1921)이 극본·연출하여 한국 최초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1962년, 영화의 날 제정 위원회에서는 <의리적 구토>를 최초의 한국 영화로 정하고, 처음 개봉한 날을 영화의 날로 선포했습니다. 연쇄극이라는 점 때문에 후대에서는 <의리적 구토>가 최초의 한국 영화가 아니라는...
사진은 매일신보 1919년 10월 28일자 ‘의리적 구토’ 개봉 광고.(출처=위키백과) 한국영화사의 첫 번째 퍼즐은 ‘의리적 구토’가 지니고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김도산 감독은 1918년 처음 ‘의리적 구투(鬪)’란...
[개설] ; 단성사 사주였던 박승필이 5천원의 자금을 출자하고 김도산이 이끌던 신극좌에서 제작한 연쇄극이다.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되었으며 조선인의 자본과 조선인 극단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한국 최초의 영화로 인정 받고 있다. 당시 단성사에서는 연쇄극을 제작하기 위해 일본에서 촬영기사 미야가와 소우노스케를 초빙해 왔고 신극좌에서는 신파극의 일부 장면을 서울의 주요 장소에서 영 ...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는 "의리적 구토"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영화는 1923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상영된 것으로, 이를 기념하여 매년 10월 27일은 한국 영화의 날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의리적 구토"가 완전한 영화가 아니라 연극과 함께 상영된 연쇄극 형식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한국 최초의 100% 극영화는 19...
2019년 10월 27일, KR 영화 100주년 기념일. 최초의 KR 영화로 알려진 의리적 구토를 재현한 무대를 준비하던 중, KR 영화사 100년을 뒤흔들 논란거리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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