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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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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청계산 중턱에 작은 암자가 있던 것을 이태조의 사부 보각국사가 은거하므로, 태조가 대사찰을 세우도록 했다 한다. 지금은 폐허가 되고 부근에는 보각국사의 부도탑인 정혜원융탑과 석등, 정혜원융탑비 등이 남아 있다. 정혜원융탑은 보각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으로 국사가 세상을 떠나자, 태조가 왕명으로 탑을 짓게 하여 권근이 비문을 짓고 탑명을 정혜원융(定慧圓融)이라 하였다. 무너져 있던 것을 1968년 복원하였으며, 석등은 보각국사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시대 석등의 기본형인 평면정사각형이다. 아랫부분에 한 마리 사자의 모습이 매우 힘차게 표현되어 있어 사자석등이라고 부른다.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지 쌍사자석등과 더불어 조선시대 사자석등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정혜원융탑비는 보각국사를 기리기 위한 비로 고려 우왕 9년에 국사가 되어 73세에 입적한 사실과 보각국사의 덕과 지혜를 기린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비 윗부분의 장식물인 개석이 없는 대신에 비신 양 끝 부분의 모서리를 깎은 귀접이 양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청룡사지에 전하는 전설 *

소태면 오량리에 청계산이 있는데 명산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조 말엽 민씨네가 득세를 할 때 청룡사 윗자리에 명당이 있다 하여 민씨네가 이곳으로 이장을 하였다. 그런데 풍수설에 따르면 명당자리 부근에 절이 있으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을 없애기로 했다. 당시 이곳에는 허씨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의 세력이 컸고 사찰의 운영권도 그들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절을 없애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민씨 가에서는 비밀리에 사람을 사서 절에다 불을 지르기에 이르렀다. 그때 이 절 지붕에서 살 던 큰 뱀이 내려와 불을 지른 사람의 앞을 가로막으니 한 사람은 놀라 자빠져 피를 토하며 죽고, 또 한 사람은 발이 떨어지지 않아 불에 타 죽고 말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절 위에 쓴 민씨 산소에 벌초를 하러 오는 사람까지도 오기만하면 생명을 잃고 갔기에 산소도 묵모이로 옮겼다고 한다.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
- 보물 (1979년 05월 22일 지정)
청룡사 옛 터에 남아 있는 비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약한 승려 보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 돌이 서 있다.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고 몸돌 양 귀퉁이를 깎아서 마무리했다. 조선 태조 3년(1394) 문인선사 희달이 왕의 명을 받아 세운 것으로 권근이 비문을 짓고 승려 천택이 글씨를 썼다. 현재 다시 새로 창건한 청룡사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보각국사탑과 그 앞의 사자석이 함께 있다.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
- 보물 (1979년 05월 22일 지정)
청룡사지는 충주시 소태면에 있는 옛 절터이다. 옛터에는 석등과 함께 보각국사의 사리탑과 탑비만이 남아있다. 이 석등은 보각국사의 명복을 빌어 주기 위해 그의 사리탑 앞에 세워진 것이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에 이를 받쳐주는 3단의 받침이 있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3단의 받침 가운데 아래받침돌 아래에 사자 조각이 있어서 사자석등이라 부른다. 절터에서 석등을 사리탑, 탑비와 나란히 세운 것은 조선시대의 배치방식이다. 탑비의 기록으로 볼 때 이 석등은 조선 전기인 태조 1년(1392)부터 그 이듬해인 1393년에 걸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바로 옆에 새로운 청룡사가 세워져서 현재 불사가 진행 중이다.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 국보 (1979년 5월 22일 지정)
* 조선시대 전기 조형미술의 표본 *
청계산 중턱의 청룡사에 자리한 부도로, 보각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았다. 보각국사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12세에 어머니의 권유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이후 불교의 경전을 두루 연구하여 높은 명성을 떨치었다. 특히 계율을 굳게 지키고 도를 지킴에 조심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조선 태조 원년(1392)에 73세의 나이로 목숨을 다하자, 왕은 ‘보각’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 이름을 ‘정혜원륭’이라 내리어 탑을 세우도록 하였다.

* 보각국사정혜원륭탑의 구성과 의의 *

탑은 전체가 8각으로 조성되었는데, 바닥돌 위에 아래·가운데·윗받침돌을 얹어 기단(基壇)을 마련하고 그 위로 탑몸돌과 지붕돌을 올려 탑신(塔身)을 완성하였다. 기단은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8각으로,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다. 가운데돌에는 사자상과 구름에 휩싸인 용의 모습을 교대로 새겼다. 탑신의 몸돌은 각 면마다 무기를 들고 서 있는 신장상(神將像)을 정교하게 새겨 놓았으며, 그 사이마다 새겨진 기둥에는 위로 날아오르는 이무기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에서 높이 들려있는데 마치 목조건축의 아름다운 지붕 곡선이 살아난 듯 하다.태조 3년(1394)에 완성을 보게 된 이 부도는 양식상 종모양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8각의 평면을 이루는 형식으로 건립된 몇 되지 않는 부도 가운데 하나로, 조선시대 전기 조형미술의 표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탑 가득히 새겨진 조각과 둥글게 부풀린 외형이 어우러져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탑신의 기둥과 지붕의 곡선, 그리고 지붕 귀퉁이의 용머리조각 등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충주 청룡사지 석종형승탑]
- 충청북도문화재자료 (2006년 03월 03일 지정)
충주시 소태면의 청룡사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석종형 부도이다. 조선시대에 유행한 전형적인 종 모양으로 지붕돌, 팔각원당형 부도재 등의 유물과 함께 보호각 안에 놓여 있다. 전체 높이가 1.98m로 비교적 대형 크기에 속한다. 탑의 몸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정사각형의 지댓돌 위에 각진 모양의 굄대가 새겨진 밑받침돌을 2단 놓고 탑의 몸을 올렸다. 탑의 몸 앞면 가운데 부분에는 문자를 새긴 흔적이 있다. 마모가 심해 육안으로는 쓰인 글씨를 쉽게 알 수 없으나 ‘적운당사리탑(跡雲堂舍利塔)’이라 쓰인 것으로 보인다. 근처에 근래에 지은 청룡사가 있으며 많은 불교문화재가 곳곳에 남아 있다.
주소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청룡사지길 147
(우:27307)
홈페이지https://www.chungju.go.kr/tour/
기본정보
문의 및 안내관광과 043-850-6723
쉬는날연중개방
이용시간상시개방
주차시설있음
주차요금 - 무료
유모차 대여 여부없음
애완동물 동반 가능 여부없음
신용카드 가능 여부없음
등산로
충주 청계산 등산로
입 장 료
무료
화장실
있음(남녀 구분)
한국어 안내서비스
문화관광해설자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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