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본문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원효대사가 관음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은 절로,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공사가 진행되면서 이름도 무위사로 바뀌게 되었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보전은 세종 12년(1430)에 지었으며,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조각이 매우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극락보전 안에는 아미타삼존불과 29점의 벽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불상 뒤에 큰 그림 하나만 남아 있고 나머지 28점은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다. 이 벽화들에는 전설이 전하는데, 극락전이 완성되고 난 뒤 한 노인이 나타나서는 49일 동안 이 법당 안을 들여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법당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49일째 되는 날, 절의 주지스님이 약속을 어기고 문에 구멍을 뚫고 몰래 들여다 보자, 마지막 그림인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고 있던 한 마리의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림속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없다.
이 건물은 곡선재료를 많이 쓰던 고려 후기의 건축에 비해,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 짜임새의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조선 초기의 양식을 뛰어나게 갖추고 있는 건물로 주목 받고 있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보전은 세종 12년(1430)에 지었으며,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조각이 매우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극락보전 안에는 아미타삼존불과 29점의 벽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불상 뒤에 큰 그림 하나만 남아 있고 나머지 28점은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다. 이 벽화들에는 전설이 전하는데, 극락전이 완성되고 난 뒤 한 노인이 나타나서는 49일 동안 이 법당 안을 들여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법당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49일째 되는 날, 절의 주지스님이 약속을 어기고 문에 구멍을 뚫고 몰래 들여다 보자, 마지막 그림인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고 있던 한 마리의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림속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없다.
이 건물은 곡선재료를 많이 쓰던 고려 후기의 건축에 비해,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 짜임새의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조선 초기의 양식을 뛰어나게 갖추고 있는 건물로 주목 받고 있다.
기본 정보
문화재유형 | 국보 |
---|---|
지정호수 | 13 |
문화재명 |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
문화재명2 | 康津 無爲寺 極樂寶殿 |
문화재분류 | 유적건조물 |
문화재분류2 | 종교신앙 |
문화재분류3 | 불교 |
문화재분류4 | 불전 |
수량 | 1동 |
지정(등록일) | 19621220 |
소재지 상세 | 전남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로 308, 무위사 (월하리) / (지번)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1174 무위사 |
시대 | 조선 세종 12년(1430) |
소유자 | 무위사 |
관리자 | 무위사 |
관련 이미지 정보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의 겨울
강진 위사 극락보전 내부 가구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내부천장 용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백의관음도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정면 공포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측면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현판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내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확대사진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측면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정면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내부가구와천장
동측면가구
뒷벽백의양유관음상
서쪽벽화
연구-041753_03_강진 무위사 극락전_건축(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041753_04_강진 무위사 극락전_건축(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컨텐츠 저작권
문화재청 및 공공데이터포털의 Open API 서비스를 통해서 구현되었습니다.